매해 시험장에 입실하다 보면,

가끔 저를 조용히 알아보는 학생들을 마주하게 됩니다.

짧은 인사처럼 들리지만, 그 한마디에는

묵묵히 지나온 시간과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곤 합니다.

얼마 전 지방직 시험장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.

시험 직전, 화장실에 들렀다가 우연히 한 학생과 마주쳤습니다.

그 학생은 조용히 말했습니다.

"선생님, 저 인강으로 수업 잘 들었어요.

강의도 잘 들었지만, 위로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.”

시험 당일, 시험장에서 마주한 그 짧은 인연이

제게는 오래 잔잔히 남는 순간이 되었습니다.

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는 동안, 

또 다른 한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.

처음엔 품사가 뭔지도 몰랐지만, 결국엔 합격했던 한 학생.

그의 합격 후기 속 한마디가 다시 생각났습니다.

"공부의 출발선은 실력이 아니라 태도였다.”(https://cafe.naver.com/englishdragon/85254 합격 후기 중에서)

그 학생이 저를 처음 찾아왔을 때,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던 게 지금도 생생합니다.

"선생님,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에요.”

실제로 품사가 뭔지도 몰랐고, 영어 문장을 한 줄 읽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.

운동선수로 살아오며 책상에 앉는 습관조차 낯설었던 그에게, 영어 수업은 무거운 도전이었습니다.

영어 수업을 들은 날이면 어디에서부터 공부해야 할지 몰라 잠도 설치곤 했다는 말을 자주 하던 게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.

하지만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.

그리고 저도 같은 마음으로 함께 걸었습니다.

단어 하나, 문법 한 조각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며 문장을 "읽게” 되는 순간까지.

그렇게 그와 함께 하루하루를 성실히 채워갔습니다.

그리고 어느 순간,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한마디.

"선생님, 이제 영어 문장이 읽혀요.”

그 한마디가, 뛸 듯이 기뻤습니다.

"읽을 수 있다는 건” 그가 길을 제대로 걷고 있다는 가장 선명한 증거이기 때문이었습니다. 

물론 운동선수 출신이라 체력이 강했던 것이 큰 무기가 되었지만,

제가 본 그의 ‘진짜 강점’은 따로 있었습니다.

그것은 지치지 않고 같은 자리에 앉는 힘, 흔들리지 않고 같은 마음으로 계속하는 태도였습니다.

사실 우리 모두가 강인한 체력으로 시작하는 건 아닙니다.

하지만 ‘매일 같은 자리에 앉는 힘’은 우리 모두가 만들 수 있고,

그 힘이 자리를 잡도록 함께하는 것이 제가 할 역할이라고 믿습니다.

그렇게 저와 함께 쌓아나간 작은 순간들이 결국 그를 시험장까지 데려다주었고,

마침내 그를 원했던 자리에 서게 만들었습니다.

지금 막 시작한 초시생 여러분,

당신이 만난 첫 문장이 낯설어도 괜찮습니다.

그 어색함을 버티는 힘이 곧, 다음 문장을 읽을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.

그리고 고민 끝에 용기 내어 다시 시작하시는 재시생 여러분,

이 길을 다시 선택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걸어온 것입니다.

당신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한 문장이,

올해 당신이 걸어갈 가장 분명한 길이 될 것입니다.

그리고 저도, 늘 같은 자리에서 끝까지 함께 걸어가겠습니다. 

성정혜